“1억 달러로 영화 한 편 만들 돈이 있다면, AI로 50편을 만드세요.”
AI 영상 스타트업 Runway의 CEO가 한 말이에요. 도발적으로 들리지만, 틀린 말은 아닐 수 있어요.
“같은 돈으로 50편을 만드세요”
지난 4월 15일 워싱턴 D.C.에서 열린 Semafor World Economy 서밋에서 Runway의 공동 창업자 겸 CEO Cristóbal Valenzuela는 이렇게 말했어요.
기업 가치 50억 달러 이상으로 평가받는 Runway를 이끄는 그의 논리는 단순해요. AI 영상 기술이 제작 비용을 대폭 낮출 수 있으니, 소수의 대작에 올인하는 대신 더 많은 작품에 베팅하는 게 유리하다는 거예요.
이미 현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
이게 단순한 주장은 아니에요. 실제 사례가 있어요.
본 아이덴티티의 Doug Liman 감독이 연출하고 Gal Gadot, Casey Affleck 등이 출연하는 “Bitcoin: Killing Satoshi”는 현재 칸 영화제에서 배급사를 찾고 있는 작품이에요. AI를 활용해 200개 이상의 촬영 장소를 런던의 스튜디오 한 곳에서 20일 만에 소화했고, 예상 제작비를 3억 달러에서 7천만 달러로 줄였어요. 스튜디오급 퀄리티를 목표로 한 첫 번째 AI 장편 영화로 주목받고 있어요. 3억 달러짜리 영화를 7천만 달러로 만들 수 있다면, 예산이 없어서 못 만든다는 말은 점점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어요.
이건 한 영화사만의 이야기가 아니에요. Amazon은 이미 영화와 TV 제작 비용 절감에 AI를 도입했고, Sony Pictures도 AI 활용을 공식화했어요. 제임스 카메론 감독도 “AI로 블록버스터를 계속 만들면서 인력 감축 없이 갈 수 있다”고 했어요. Valenzuela는 AI가 이미 프리프로덕션, 스크립팅, 기획, 시각효과 등 제작 전 과정에 걸쳐 적용되고 있다고 말했어요. 할리우드 전체가 같은 방향을 보고 있는 거예요.
예술에 대한 투자인가, 확률 게임인가
물론 반발도 거셌어요. AI에 비판적인 창작자들은 영화는 확률을 높이기 위해 찍어내는 게 아니라 예술에 대한 투자라고 말해요. 50편을 만든다는 발상 자체가 창작을 공장 생산처럼 보는 시각이라는 거죠.
이 반발이 단순한 감정적 거부는 아니에요. 실제로 요즘 SNS, 유튜브, 블로그를 보면 AI를 활용한 콘텐츠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는데, 많은 사람들이 오히려 거기서 피로를 느끼고 있어요. 이유가 있어요. AI 콘텐츠 상당수가 사실 확인도 없이, 검수도 없이, 비슷한 형태로 찍어내듯 만들어지거든요. 많이 만드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만드느냐가 문제예요.
Make.com으로 자동화 파이프라인을 직접 만들면서 느낀 것도 비슷해요. 일단 돌아가게 만들고 고쳐나가는 방식이 완벽하게 만들려고 붙잡고 있는 것보다 빨리 배웠던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그게 가능했던 건 매번 결과물을 직접 확인하고 판단했기 때문이에요. 검수 없이 자동으로만 돌아갔다면 달랐을 거예요.
Valenzuela의 논리가 틀렸다고 말하기는 어려워요. 하지만 50편을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이, 50편을 그냥 찍어내도 된다는 뜻은 아닐 거예요.
할리우드 이야기지만, 우리 이야기이기도 해요
블로그 글이든, 유튜브 영상이든 — AI 도구를 쓰면서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같은 선택 앞에 서 있어요. 더 많이, 더 빠르게 만들 수 있다는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그 가능성이 검수 없이 찍어내도 된다는 뜻은 아닐 거예요.
Valenzuela가 말한 50편이 의미 있으려면, 50편 각각에 사람의 판단과 관점이 담겨야 해요. AI가 낮춰주는 건 제작 비용이지, 생각하는 비용이 아니거든요.
여러분이 AI로 만드는 콘텐츠엔 얼마나 많은 사람의 생각이 들어가 있나요?

